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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now King

육성재 그리고 이창섭

본 글은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쓴 글이구요, 동화합작 참여작입니다. 제 글 제외 존잘님들의 존잘글이 넘쳐나는 합작계 링크 >>https://novel-ending-rps.postype.com

언제 부터인가 사람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한명, 두명, 세명, 사람들이 변하는 숫자는 빠르게 늘어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저에게 인사해주던 옆집 아주머니가 인사하는 저를 무시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지나갔을 때, 그제서야 창섭은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걸 인지하게 되었다.


The Snow King

w.키아




 처음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을 때 이후로 창섭은 하루의 시작은 정해져 있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그는 일어나자마자 성재의 집 앞으로 향했다.

"육성재!!"

"아, 시끄러. 왔냐?"

"오늘은 해선 아주머니가 변했어. 이러다 나도 변하면 어떡하지?"

"아, 정말. 쓸데없이 겁만 많아가지고 어떡할래. 걱정마,걱정마. 넌 내가 지켜준다니까?"

"푸핫, 뭐라는거야. 뭐, 그래도 네 그 근거없는 자신감에 안심되는 날도 있네."

"그치? 나만 믿으라고. 얼렁 들어와"

 내가 찾은 집은 육성재의 집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있는 몇안되는 또래였던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쭉 모든 것을 함께 했다. 서로의 부모님이 변했을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동시에 위로받았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우리는 둘다 멀쩡했다. 대체 무엇때문인 걸까. 혹시나 싶어서 성재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는 않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짧게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차가운 시선이 전부였다.

"아, 인사 하지 말라니까. 소용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아냐. 정말 소용없는 짓이야. 빨리와서 밥이나 먹어."

"응.."

아무렇지도 않은듯 애써 웃으며 넘기는 음식은 맛있었다. 넌 왜 요리도 잘해. 어이가 없다. 햐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내일은 니가 와라-, 인사와 같은 말을 하며 육성재의 집 밖을 나섰다.

으..추워. 언제부터인가(아마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을때 부터이겠지) 날씨 또한 추워져서, 요즘의 마을은 뼈가 시리도록 날카로운 추위의 연속이었다. 얼어죽기 전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지. 걸음을 빨리하여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허억!..."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무엇인가가 날아와 심장과 눈을 찌른것만 같았다. 눈 주위에 손을 가져다 대 보았으나 역시나 만져지는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종래에 나는 한쪽 손으로는 심장 부근을 움켜잡고, 다른 손은 눈을 누른채 길바닥 위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집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니 육성재가 울다 지친 얼굴로 내 손을 잡은채 잠즐어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이건 뭐야?"

그가 잡고 있는 손이 더러워지는것 같았다. 왜 잡고 있어. 아 내가 왜 여기 있더라. 집으로 가야겠다. 아침부터  짜증나게,귀찮아.

"이창섭..?"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무시하자.

"야! 너 왜 거기 쓰러져있.."

"아, 시끄러. 안그래도 지금 가!"

"..뭐?"

멍청한 물음에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다. 내가 뭐하러 그래.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유지하는 육성재를 지나쳐 집 밖으로 나왔다. 빨리 집에 가자. 아, 진짜 짜증난다.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계속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다음날 아침에 육성재가 찾아왔다. 왜 찾아오는거지? 아침부터 시끄러워 죽겠다. 문 열러 가기도 귀찮았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또 쾅쾅대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뭐."

"야..너 무섭게 왜그래."

"아, 뭐라는거야. 할말없음 가."

"..."

충격받은 얼굴로 서있는 육성재를 무시하고 문을 닫았다. 짜증나. 할말도 없는데 왜 쳐 불러. 그나저나 왜이렇게 춥지? 난로가 덜 틀어졌나? 아닌데. 춥고 짜증난다. 한번 인지하니 입술이 덜덜 떨려오는 매서운 추위가 느껴졌다. 이불로 꽁꽁 싸맸음에도 추위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추워. 추워. 추워. 누가 좀 도와줘.


"내가 도와줄까?"

분명 문을 열어준 기억은 없었는데. 육성재가 다시 들어와 있었다.

"니가 어떻게?"

"방법이 있지."

"..응. 도와줘. 얼어버릴것 같아. 너무 추워."

"그래."

가까이 다가온 육성재는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뭐하는 걸까. 그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맞닿자 신기하게도 추위가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다시한번 정신을 잃었다.


처음 보는 천장. 여긴 어디지? 근데 내가 누구더라? 아, 여기가 내 집이었나.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에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겨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내게로 왔다.

"일어났어?"

"..누구세요?"

"나? 난 이 성에 주인인데?"

"아.."

"또, 내가 널 뼈와 살이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꺼내주었지."

"..감사합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자신을 이 성에 주인이라고 칭한 눈앞의 남자는 과연, 이 눈이 부시도록 하얀 성과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어디선가 봤던 얼굴 같은데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다. 이 남자가 구해줬다는 그때의 기억인가? 음, 자세히는 몰라도 눈 앞의 그가 잘생겼다는 것은 알겠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성 안에서 그의 황금빛 머리카락은 더욱 빛이나 보였다.

"자, 이제 여기가 너의 집이야. 내 성에 온걸 환영해."

나의 집이라. 나의 집.  그렇구나.

창섭은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다. 눈을 감았다 떠보길 반복한 것도 한참이 지났는데 그는 오지 않았다. 창섭은 그가 없으면,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가 올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 가 틀린말은 아닌게 어제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누워있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없이 애절하고 무엇때문인지 몹시 지친듯한 목소리였다. 분명 아닐텐데, 그도 잘 아는 목소리였다. 누구길래 자신을 이리 부르는 걸까. 창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소리의 주인이 궁금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는 위쪽에서 들어왔다. 그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방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성의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었기에 창섭은 고민을 마치고 문을 열었다. 자신이 들어오길 알기라도 했다는 듯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간 방의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가운데 놓여있는 거울만 뺀다면. 대체 무슨 거울이길래 그가 자신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을까.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소리는 끊겼지만 아마 저 거울에서 나왔으리라.

"..거기 누구있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살짝 민망해지려는 찰나에, 거울 안에서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눈으로 뒤덮인 산 속을 걷고 있었는데, 그 길의 끝에는 우리 성이 있는것 같았다. 저 남자는 누구이길래 이 성으로 오는걸까. 이곳에 있으면서 외부인을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순수하게 이 남자가 조금 궁금해졌다.

"아, 너무 오래있었다."

시간이 훌쩍 지났음을 깨닫고 서둘러 밖으로 나와 방안으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성의 주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몸에 있는 힘이란 힘은 전부 뺀채로 누워  있었다. 따분해. 누군가가 날 봤다면 시체인줄 알았겠다.

쾅!쾅!쾅-!

악, 깜짝이야. 뭐야?

"이창섭! 너 거기 있지! 당장 이거 열어!"

문 밖에 서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놀랐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지은 표정은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라 나는 그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성의 주인과 똑같은 생김새의 남자가 외치는 통에 열까 말까 고민 하고 있었는데 언제 돌아왔는지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 여기 똑같은 얼굴이 두개가 있네.

"열어줘도 되요?"

"왜? 창섭아, 쟤 알아?"

"..아니."

'이창섭!'

문 밖에서 나를 부르던 그 남자애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 심장부근이 따뜻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왜, 쟤는 나를 부르면거 우는거지? 그 순간이었다. 오래전에 가슴 속에 가라앉아 잊고 있던 기억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러니까 저 남자애와 나는 꽤 오랫동안 붙어 지냈던 거 같다. 근데 쟤가 누구지? 나는 ..나는 맞아. 집으로 가는 길에 정신을 잃었다. 떠나기 전의 마을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차갑게 변했고 부정적인 생각들만 해댔던가.

"아는 사람같아요. 열래요."

"아니, 열지마."

"..싫어."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얼굴은 가까이서 보니 더욱 더 익숙한 느낌이었다.

"야!.. 너, 넌 정말. 내가 얼마나...다시 못보는 줄 알고, 진짜..됐다. 지금 너한테 말해봤자 뭐하겠어."

"날 알아?"

"어. 아주 잘알지. 어후, 저게 뭐야."

그렇게 말하면서 내 뒤에 서있는 이 성의 주인, 저 남자를 보는 것 같았다는 건 그저 착각일까. 눈빛이 제법 사납던데. 대체 나는 무슨 사람이었던 걸까.

"이제 그만 돌아가자."

"..어디로?"

"어딜가. 이 아이 집은 여긴데."

갑작스레 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는 말이야. 내 집은 여긴데 내가 어딜가지. 저 애는 아까부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아니야! 여긴 저 자식의 집이잖아. 이창섭! 넌 여기가 아니라 나와 같은 마을에 살았잖아! 우리 마을. 저 산 아래 있는."

"산 아래?"

"넌 신경쓰지마. 그리고 너, 당장 나가.얼려버리기 전에."

"왜? 역시 넌 이창섭이 기억해 낼까봐 겁나는 구나. 진짜 전부 다시 기억해낼 수 있었어."

"닥쳐. 한 마디만 더하면 정말 얼려버리겠어."

"그럼 얼려봐. 이창섭, 내 이름은 육성재야."

말을 마치자 마자 그는 얼었다. 그래,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저 남자에겐 사람하나 얼리는 것쯤이야 숨쉬기 보다 쉬웠을테니. 육성재. 육성재라. 지금은 얼음 속에 갇혀있는 저 얼굴 만큼이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걱정마,걱정마. 넌 내가 지켜준다니까?'

응?

'푸핫, 뭐라는거야. 뭐, 그래도 네 그 근거없는 자신감에 안심되는 날도 있네.'

분명 처음 보는데도 익숙한 집이었다. 자신을 육성재라고 소개한 저 남자. 존재라지 않았던 기억속에서 나는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치? 나만 믿으라고. 얼렁 들어와'

육성재도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눈이 아파. 아픈 눈을 붙잡으니 잊고 있던 기억이 물 밀듯 쏟아져 내려왔다. 처음 길 위에서 심장과 눈이 무섭도록 아팠던 그때, 그래 그때가 시작이었다. 그 날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어. 내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저 남잔 모든 눈을 다스리는 눈의 왕이었다. 순간, 어렸을 때 그에 대한 이야기-성격이 매우 사납고 잔인하며 포악하다는-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용케 여태 안죽고 살아있었다. 그가 나를 보았다. 화가 나있는것 같았다. 무섭게.

"다 기억났나봐?"

"..그래. 대체 무슨 생각이지?"

"뭐가?"

"뭐냐니! 그야..아니, 아니야. 제발 육성재를 살려줘."

"둘 다 멍청한건 아니라서 다행이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할까. 응?"

"..원하는게 뭔데."

"창섭아, 왜 울고 그래. 마음 아프게."

끝까지 정말, 대체 이자식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

"너."

"뭐라고?"

"얼음을 깨는 방법은 간단해. 알고싶어?"

"..당연히, 응."

"게임 하나 할래?"

게임? 갑자기 무슨 게임이야. 아 그래, 너한텐 이게 다 장난일 텐데. 내가 잠시 잊고 있었네. 그래 하자. 너한텐 게임. 나한텐 마지막 기회일 그 거.

"간단해. 네 손에 있는 칼을 쥐고,"

칼? 뭐야 이거.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근데 무슨, 뭘 하려고 나한테 칼을 줘. 무슨 생각이야.

"푹,나를 찔러."


저런 미친놈. 한번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뒤에 푹,푸슉 같은 이상한 소리를 덧붙였다. 진짜 미친 자식.

"뭐?"

"얼른.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거 알잖아."

"정말 미쳤어?"

"빨리 육성재를 구해야지. 창섭아, 쟤가 얼음 속에서 얼마나 버티겠어. 방법은 알려줬잖아."

"넌 진짜 미쳤어. 죽으면 당장 지옥으로 떨어질거야."

"하하-, 알아. 단 한순간도 그러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해본적 없어."

"..."

"..울지말라니까. 난 악역이잖아."




*


"콜록! 콜록... 아..이창섭?"

"뭐야. 왜 울어? 어떻게 된거야. 왜 넌 울고 있고 저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걸까. 얼음이 온 몸을 꽤뚫는 것만 같았다. 살점 하나 하나가 추위에 베이는 것 같았고 숨은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으며 온 몸을 짓누르는 얼음이 뼛 속 깊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정신은 멀쩡한데, 이창섭과 그 자식은 어디있는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점점 몸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천천히 포기하던 중이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감각들이 돌아왔다.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지고 다시 성 내부에 있는 우리가 보였다. 이창섭은 울고 있었다. 그 남자는 심장에 칼이 꽂혀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히 물어보면 안될것 같은 지금의 분위기가 싫었다. 일단 나가자. 그에게 말하고 일으켜 세웠다. 아직 까지도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문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창섭을 데리고 나오자 마자 들리는 커다란 소리에 돌아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돌아온 마을은 오래전, 추위가 시작되기 전과 같은 활기를 띄고 있었다. 변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본래의 따뜻함을 되찾았다.  이창섭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좀 더 지켜보았을 때에는 기억을 잃은건가 싶기도 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아무도 얼음성을 이야기 하지 않았고, 기억하지도 못했다. 소름끼칠만큼 나와 똑같이 생겼던 그 악마같은 자식은 그날 죽었을테지. 과정에 무슨 이야기가 감춰져 있었든 우리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그렇지, 창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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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흉터